웃지않는 세 정승.txt

웃지않는 세 정승.txt

2015. 6. 12. 20:54정보/내가 필요한 정보


웃지않는 세 정승




충남 예산에 열 두 대문 집 안의 한 채로써,

절간처럼 큰 집에서 살 때의 일이다.

내가 중학교 시절 어느 여름 이었던 것 같다.

저녁을 먹고 숙제를 끝내고 나면 할 일이 없었다.

그때는 텔레비전도 없었고 라디오는 있었으나

 내 차례까지 오는 경우가 드물었다.

 

시원한 대청마루에 돗자리를 깔고, 매실주스를 마시거나

때로는 참외나 수박 혹은 감자 등을 먹으면서

아버지는 가끔씩 교훈이 되는 옛날이야기를 해 주셨다.

그중에 이야기 한 가지를 적어본다.

 

“옛날에 웃지 않는 세 정승이 있었단다” 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말씀은

 어찌나 천천히 하시는지? 나는 항상 결론부터 듣고 싶어 안달을 했다.

 아버지보고 말 좀 빨리 빨리 하시라고 하면

 “그러면 나 말 안 한다” 하시는 바람에

그 이야기를 들으려면 참는 길 밖에는 없었다.

 

첫 번째 이야기다.

능력이 있고 인품이 좋은 한 정승이 있었는데,

전혀 웃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.

하루는 임금님이 그대는 왜 웃지를 않는가? 하고 물으시니

 “저는 웃고 살 수가 없습니다” 하면서 그 이유를 말하더라는 것이다.

삼 십여 년 전, 제가 젊었을 때, 결혼식을 마치고

색씨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.

색시는 원삼입고 족두리를 쓰고 연지 곤지 찍은 채 얌전히 앉아있는데.

제가 변소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서 일어나 문지방을 넘으려 하자

색시가 도포자락을 잡는 것 같았습니다.

그래서 뒤돌아서 색시를 보니 색시는 시침을 딱 떼고

얌전히 그렇게 앉아 있는 것입니다.

또 다시 나가려고 하니 아까처럼 또 도포자락을 꽉 잡는 것 이었습니다.

괘씸하여 쳐다보니 또 그렇게 얌전을 떨고 앉아 있었습니다.

이럴 수가 있나? 첫날밤도 안 지낸 새 색시가

새신랑 도포자락을 잡아 다니다니 너무나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,

다시 그냥 홱! 하고 나와서 제 집으로 와버렸습니다.

 자초지종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니, 부모님께서도

“ 첫날밤도 안 지낸 새 색시가 발칙하구나” 하시며

다시 과거 준비에만 열중하라고 하셨습니다.

과거에 급제하고 원님으로 발령을 받은 곳이 바로

첫 번째 결혼했던 그 고을 이였기에,

옛날 생각이 나서 그 여자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?

한번 가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

그래서 그 집을 살며시 찾아가보니 그때는 크고 좋던 기와집이

다 허물어지고, 문짝들도 다 덜렁 덜렁 떨어질듯 하여

귀신이라도 나올 양, 마당에는 무성한 잡초더미가 우거져 있고,

거미줄로 가득한 흉가가 되었더군요.

어찌하여 이 집이 이리 되었는가? 하면서,

그래도 그때 그 새 색시가 앉아있던 방이 궁금하여

열려진 그 방 앞에 와서 들여다보니 아니 이게 왼 일입니까?

색시가 그때 결혼식 날 곱게 차려 입은 그대로

원삼입고 족두리를 머리에 얹은 채 얌전히 앉아 있는 게 아닙니까?

 

엉겁결에 색시야! 하며 들어가 보려고 문지방을 넘으려다 보니

문지방에 작은 못 끝이 나와 있는 게 아닙니까?

아! 이 못 끝에 나의 도포자락이 걸렸었구나,

저는 그때서야 알았습니다.

 

아마도 색시는 그때 나간 신랑이 왜 안돌아오나?

왜 아니 오나? 하면서 기다리다 지쳐서

그때 그 모습 그대로 있구나 깨달았습니다.

저는 방으로 들어가서 “색시야” 하며 만지려고 손을 대니

그 모습이 사그르르 삭아내려 한줌의 재가 되어 버렸습니다.

아! 이 못 끝에 옷자락이 걸린 것을,

저는 색시가 붙잡고 앙큼을 떨었다고 오해해서,

멀쩡한 새색시를 죽게 하고, 그 집안을 패가로 만든 경솔했던 저를,

저는 용서 할 수가 없습니다.

그래서 저는 웃지 않습니다.

임금님은“ 아! 그랬구나, 훌륭한 정승이오” 라고 하셨단다.

 

두 번째 이야기다.

한 정승이 있었다. 그도 웃지 않았다.

그대는 왜 웃지 않는고? 임금님이 물으셨다.

그 정승도 그 이유를 이야기 했다.

저는 과거 급제하여 제 처와 제 자식들을 데리고

첫 발령지로 간곳이 어촌 이었습니다.

그곳의 주민들은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서 팔아야 먹고사는 곳 이었습니다.

그곳은 풍랑이 심해서 고기잡이 나갔던 배가 뒤집어져서

해마다 많은 남자들이 죽곤 했답니다.

그래서 해마다 여자를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답니다.

여자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문제가 제일 큰 문제 였답니다.

제가 새로 부임하여 그해는 제가 동네 여자들을 모아 놓고,

해안가 절벽에서 물론 제 아내도 포함하여 저고리를 벗어

바닷물에 던져 저고리가 제일 먼저 가라앉는 저고리의 임자가

그 해의 제물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.

설마 제 아내의 저고리가 제일먼저 가라앉을 리라고는

상상조차하지 않았습니다.

 

그런데 왼 일입니까?

동네 여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제 아내의 저고리가

제일 먼저 가라앉는 게 아닙니까? 원님이 한 말은 법이고,

법은 지켜야 하는데, 그러나 원님의 권한으로

제 아내는 안 된다고 할 수도 있었겠습니다만,

제 아내는 남편의 권위를 세워 주기 위하여

얼른 바다에 뛰어들어 제물이 되었습니다.

처음 말할 때 제 아내를 빼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.

그렇게 하지 못한 제가 제 아내에게 얼마나 미안함이 큰지

그 죄스러움 때문에 저는 평생 웃을 수가 없습니다.

임금님은 “아 ! 훌륭한 정승 이오” 라고 하셨단다.

 

세 번째 이야기다.

그대 정승은 어찌 웃지 않는고? 하고 임금님이 물으셨다.

그 정승이 이유를 이야기 했다.

저는 젊었을 때 아주 가난 했습니다.

끼니를 이을 수 없이 가난했을 때 장가를 갔습니다.

저는 과거에 급제하려고 방에 앉아 공부만 하고,

아내는 남의 밭도 매어주고, 빨래도 해 주고,

방아도 찧어주면서 조금씩 곡식을 얻어다 저의 끼니를 이어 주었습니다.

그러던 어느 날, 아내가 일을 가면서 오늘은 비가 올 것 같다고 하면서

 비가 오면 얼른 나가 마당에 널은 곡식을 걷어다가

방으로 옮겨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.

저는 그러마고 했는데, 비가 왔는지?

곡식이 물에 다 떠 내려 갔는지도 모르고 글만 읽었습니다.

저녁에 아내가 와서 곡식이 다 어디 있느냐 고 물어서,

비가 왔느냐고 되물으니 아내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?

아내는 동네의 궃은 일은 다 해가며 제 끼니를 이어 주었고,

 아내는 때로는 곡식이 없어 굶고 일만하다가 병들어 죽었습니다.

그 후 저는 과거에 급제하고 정승까지 되었습니다.

 저는 그 아내가 아니 였 으면 지금의 정승까지 된 제가 있었겠습니까?

그 아내를 잊을 수 가 없습니다.

그리고 웃을 수 가 없습니다. 라고 하였다.

임금님은 “아 ! 훌륭한 정승 이오” 라고 하셨단다.

 

이야기를 마무리 지시는 아버지의 눈을 보면,

그 이야기들의 그림이 머릿속에서 안 떠나나 보다,

스스로 리얼한 감동 속에 자리를 뜨지 못하신다.

이런 이야기들은 45년여 쯤 된 이야기이고,

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신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,

아직도 천천히 말씀 하시는 아버지의 감격어린 그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.